1953년 8월 우장춘의 어머니가 사망하였다. 그러나 우장춘은 어머니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했다. 어머니의 위령제를 원예시험장의 강당에서 지냈는데, 전국 각지에서 조의금이 전달되었다. 그는 이 돈으로 전부터 식수 부족으로 고민해 온 원예시험장내에 우물을 파고 '자유천(慈乳泉)'이라 명명했다.
자유천의 지붕은 기와를 얹고 큼직한 화강암으로 우물을 만들어서 자유천이 장엄하고도 자혜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게 했다. 그는 매일 자유천의 우물물을 퍼 올려 세수를 하였고, 주위를 깨끗이 청소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