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중기의 문신 이규보(李奎報 : 1168~1241)의 시문집 '동국이상국집'이 있다. 동국이상국집은 12~13세기 고려시대 화훼문화사를 연구하기에 매우 귀중한 자료인데, 저자인 화훼나 화단 가꾸기에 관심이 많아서 그가 쓴시에 많은 꽃이름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규보는 꽃기르기를 매우 좋아하였던 인물로 일반 역사 자료도 부족한 고려시대에 무려 800여년 전 취미로 꽃기르기에 대한 많은 에피소드와 관련 꽃식물명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있다. 또한 삼국시대나 고려 전기의 일상에 대한 기록이 그다지 없는 현실에서 우리나라 고유의 꽃식물 한자명인 동백(冬柏)이나 사계화(四季花, 연중 꽃피는 장미), 지당화(地棠花, 황매화) 등이 문헌상 최초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이 문집인 것이다.
이번 전시는 고려 중기 '동국이상국집'에 등장하는 장미, 동백, 원추리 등 꽃식물 35종(꽃나무 23종, 초화 12종)을 실물과 함께 관련 시, 설명문, 사진으로 꾸민다. 고전 번역 과정의 혼란으로 해당화, 해바라기, 금잔화, 오동나무로 오해를 부른 '해당꽃나무(海棠, 해당)', '닥풀(葵花, 규화)', 펜타페테스(金錢花, 금전화)', '벽오동(碧梧桐)'의 특징과 매력도 알릴 예정이다.
한국도로공사 전주수목원과 국립원예특작과학원은 공동으로 화훼문화사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고전 속 전통 화원 꽃식물 전시의 일환으로 고전 속의 화원을 주제로 2023년에는 조선 후기 꽃백과사전인 임원경제지 예원지 화원, 2024년에는 조선 전기 '귀공자의 비밀의 화원(안평대군 저택의 화원)'에 이어 올해 세번째로 전시한다.
'800여년 전 고려 중기의 뜰에는 어떤 꽃들이 있었을까?'하는 다소 뜬금없는 물음에서 시작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작은 전시 공간에서 꽃을 무척 사랑했던 시인을 따라 시공을 초월하여 그가 손수 장미를 심으며 친구와 술잔을 기울였을 개성(황해도)이나 강화도(경기도)의 어느 뜰을 같이 거닐며 시인이 살구꽃을 읊은 시구처럼 여한없이 꽃 가득한 봄을 즐겨 보자.

